어느 남편의 일기

by 관리자 posted Sep 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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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결혼 8년차에


접어드는 남자입니다.

저는 한 3년전 쯤에

이혼의 위기를 심각하게 겪었습니다.

그 심적 고통이야

경험하지 않으면 말로 못하죠.

 


저의 경우는 딱히 큰 원인은 없었고

주로 아내 입에서

이혼하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더군요.

저도 회사생활과 여러 집안 일로

지쳐있던때라 맞받아쳤구요.

 


순식간에 각방쓰고

말도 안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화가 없으니

서로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져 갔구요.

사소한 일에도

서로가 밉게만 보이기 시작했죠.

그래서 암묵적으로

이혼의 타이밍만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도 눈치가 있는지

언제부턴가 시무룩 해지고

짜증도 잘내고 잘 울고 그러더군요.

이런 아이를 보면 아내는

더 화를 불 같이 내더군요.

계속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가 그러는 것이

우리 부부 때문에 그런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요.

 


가끔 외박도 했네요.

그런데 바가지 긁을 때가 좋은 거라고

저에 대해 정내미가

떨어졌는지 외박하고 들어가도

신경도 안쓰더군요.

 


아무튼 아시겠지만

뱀이 자기 꼬리를 먹어 들어가듯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었답니다.

 


그러기를 몇 달,

하루는 퇴근길에 어떤 과일 아주머니가

떨이라고 하면서

귤을 사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에

다 사서 집으로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주방 탁자에 올려 놓고

욕실로 바로 들어가 씻고 나오는데

아내가 내가 사온 귤을 까먹고 있더군요.

몇 개를 까먹더니

"귤이 참 맛있네" 하며

방으로 쓱 들어가더군요.

 


순간 제 머리를 쾅 치듯이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아내는 결혼 전부터

귤을 무척 좋아했다는 거하고,

결혼 후 8년동안

내손으로 귤을 한번도

사들고 들어간 적이 없었던 거죠.

알고는 있었지만

미처 생각치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뭔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예전 연애할때

길 가다가 아내는

귤 좌판상이 보이면 꼭 천원어치 사서

핸드백에 넣고 하나씩

사이좋게 까먹던 기억이나더군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해져서

내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답니다.

 


시골집에 어쩌다 갈때는

귤을 박스채로 사들고 가는 내가

아내에게는 8년 간이나

몇백원 안하는 귤 한개 사주지 못했다니

마음이 그렇게 아플수가 없었습니다.

 


결혼 후에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전혀 쓰지 않게 되었다는 걸 알았죠.

아이 문제와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말이죠.

 


반면 아내는 나를 위해

철마다 보약에

반찬 한가지를 만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신경 많이 써 줬는데 말이죠.

 


그 며칠 후에도

늦은 퇴근길에 보니

과일 좌판상 아주머니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또 샀습니다.

저도 가다가 하나 까먹어 맛보았구요.

 


며칠전 아내 말대로 정말 맛있더군요.

그리고 살짝 주방 탁자에 올려 놓았죠.

마찬가지로 씻고 나오는데

아내는 이미 몇개 까먹었나 봅니다.

 


내가 묻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않던 아내가

"이 귤 어디서 샀어요?"

"응 전철 입구 근처 좌판에서"

"귤이 참 맛있네"

 


몇달만에 아내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도

몇알 입에 넣어주구요.

그리고 직접 까서 아이 시켜서

저한테도 건네주는 아내를

보면서 식탁 위에 무심히 귤을 던져놓은

내 모습과 또 한번 비교하며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뭔가 잃어버린 걸 찾은 듯

집안에 온기가 생겨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아내가 주방에 나와

아침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보통 제가 아침 일찍 출근하느라

사이가 안 좋아진 후로는

아침을 해준적이 없었는데...

그냥 갈려고 하는데,

아내가 날 붙잡더군요.

한 술만 뜨고 가라구요.

마지못해 첫 술을 뜨는데,

목이 메여 밥이 도저히 안넘어 가더군요.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같이 울구요.

그리고 그동안 미안했다는

한마디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부끄러웠다고 할까요.

 


아내는 그렇게 작은 일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작은 일에도 감동받아

내게로 기대올 수 있다는 걸

몰랐던 나는 정말 바보 중에

상바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사소한것에 감동을 느끼는데...

변했다싶던 그사람

어쩜 나의 관심이 필요했는지 몰라요.

곁에있는 사람..

 


- 옮긴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