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나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가 보이지 않았다
'이럴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리가 없는데...'
바로 그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왔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여덟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어쩌나,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숨을 몰아쉬는 친구 아내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석민이 아빠는 못 왔어요. 죄송해요...
대신 석민이 아빠가 이 편지 전해드리라고 했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뒤집어쓴 채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리어카 사과 장사이기에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굶어야 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천원이다
하지만 힘들다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 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내겐 있으니까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를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 가서 먹어라
친구여, 오늘은 너의 날이다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해남에서 친구가- 』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만원짜리 한장과 천원짜리 세장...
뇌성마비로 몸이 많이 불편한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겨울 추위와 바꾼 돈
나는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데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할텐데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기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나는 어깨를 출렁이며 울어버렸다
사람들이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가운데 서서...
- 축의금 만삼천원 / 이철환 수필집 <곰보빵> 중에서